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언 긱스 (문단 편집) === 클럽 경력 === 스카이 스포츠에서 만든, 라이언 긱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21e60G1Tynk|Football's Greatest - Ryan Giggs]][* 원래 영상 자체가 있었으나, 차단당하여 바꾸었다.] EPL 역사상 가장 많은 리그 트로피를 든 선수가 되었으며 평생 하나 들기도 힘들다는 트로피들을 문자 그대로 쌓아 놓고 있다. 긱스의 전성기가 바로 맨유의 전성기라고 봐도 무방하다. || [[파일:57125c72.jpg|width=100%]] || [[파일:attachment/데이비드 베컴/Example.jpg|width=100%]] || || {{{#ffe500 '''[[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|{{{#ffe500 맨유}}}]] 전설의 유스 출신 선수들인 Class of 92.[* 긱스 왼쪽의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 선수들을 유스 시절부터 키워낸 에릭 해리슨 코치다. 현지 시간 2019년 2월 13일에 별세했다.] 어깨 동무 중인 왼쪽부터 {{{#ffe500 라이언 긱스}}}, [[니키 버트|{{{#ffe500 니키 버트}}}]], [[데이비드 베컴|{{{#ffe500 데이비드 베컴}}}]], [[게리 네빌|{{{#ffe500 게리 네빌}}}]], [[필립 네빌|{{{#ffe500 필립 네빌}}}]], [[폴 스콜스|{{{#ffe500 폴 스콜스}}}]], 테리 쿠크[* 당시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약 4년간의 임대 생활을 거쳐 결국 [[맨체스터 시티 FC]]로, 거기서도 임대 생활만 전전하다가 [[메이저 리그 사커|MLS]]의 [[콜로라도 래피즈]]에서 겨우 정착해서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2011년 은퇴했다.]''' }}} || {{{#ffe500 ''' 2011년 게리 네빌의 은퇴 경기에 이들은 다시 모여 그때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찍었다.'''}}} || 1991년 3월 2일 [[에버튼 FC|에버튼]]과의 경기에서 [[데니스 어윈]]과 교체 투입되어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, [[맨체스터 더비]]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. 1991-92 시즌에는 당시 주전 [[레프트윙]]이었던 리 샤프의 부상으로 1군 기회를 얻게 되었고, 나이를 뛰어넘은 빼어난 활약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다. 1992-93 시즌에는 등번호 11번을 받게 되었고 팀은 시즌 초반 부진했으나 후반기에 팀을 바로잡고 프리미어 리그로 새로이 출범된 리그 첫 우승을 이루게 된다. 이듬해에는 리그와 FA컵 더블을 기록하게 된다. 10대에 1군 무대에 '''데뷔했을 때부터 완성된 선수'''라는 극찬을 받았고 오랜 세월 축구계 레프트 윙어의 [[본좌]]로 군림했다. 당시 '''좌긱스 - 우베컴'''라인은 유럽 전역을 [[충격과 공포]]로 밀어넣은 라인이었고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역대 최고의 좌우라인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조합이다. ||[[파일:external/www.soccerline.co.kr/giggs_beckham030608.jpg|width=100%]]||[[파일:external/static1.purepeople.com/624085-david-beckham-a-joue-les-90-minutes-950x0-3.jpg|width=100%]]|| ||<-2> 좌긱스 - 우베컴 Before & After. || 철저한 자기 관리와 뛰어난 프로정신 또한 유명하며, 수많은 팀의 동료, 후배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선수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. 다만 맨유 클럽하우스에서 오랜 세월 일했던 어느 [[할머니]]의 증언에 의하면 어렸을 때는 [[친구]]들하고 놀러다녀 [[알렉스 퍼거슨]] 감독이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. 말쑥하고 매력적인 외모[* 박지성이 이적한 후로 맨유를 보게 된 한국팬들은 긱스가 수염을 기르고 나이가 들었을 때의 모습 밖에 모르지만 젊었을 때 긱스는 퍼거슨 자서전에 나와 있듯이 베컴 부럽지 않은 수려한 외모를 소유했었다. 퍼거슨은 긱스도 원한다면 베컴처럼 연예인이 될 수 있었지만 스스로가 축구에 집중하길 선호했다고 서술했다.]에 화려한 플레이스타일, 젊은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 것 등 스타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데뷔초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.[* 무시무시한 드리블 실력과 깔끔한 외모를 갖추었기에 조지 베스트의 재림이라고 미디어가 치켜세웠다.] 이에 퍼거슨 감독은 긱스에게 '''2년 간 인터뷰 금지령'''을 내렸고 긱스는 당시엔 그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든 후 덕분에 자신은 인기 스타가 아닌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. 나이가 들자 "몸은 느려지는데 머리는 더욱 빨라진다."라는 [[명언]]을 남겼으며, 실제로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고 있다. 실제 긱스는 30세를 맞은 2002-03 시즌[* 리그 36경기 8득점, 전체 59경기 14득점.] 이후 두자리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으며, 팀 또한 세대 교체를 위해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나 [[앨런 스미스]] 등 신진 선수가 다수 영입되면서 긱스 또한 [[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|인터 밀란]] 이적 추진을 겪는 등 위기를 맞았다.[* 이 과정에서 [[니키 버트]], [[필립 네빌]] 등의 베테랑들이 밀려나갔다.] 긱스는 이에 맞춰 포지션을 중앙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,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옮겨 다니며 풍부한 경험과 번뜩이는 클래스로 여전히 클럽의 핵심 선수 중 하나로 활약하여 '''클래스는 영원하다'''는 축구계의 명언을 실증했다. 포지션 변경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라 극찬을 받았으며, 07-08시즌에는 리그 최종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가 하면,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결승전에 교체 출전하여 9년만의 우승에 기여했다. 08-09시즌 엄청난 논란과 함께 [[PFA 올해의 선수]]에 선정되고 영국 BBC 선정 최고의 스포츠인 상을 수상했다. [* 다만, 08-09시즌 올해의 선수상은 [[스티븐 제라드]]가 수상했어야 됐다는 것이 축구계의 압도적인 중론이다. 당시 제라드와 비디치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올해의 선수상은 둘 중 한명이 유력했으나 비디치가 치명적인 실수를 보여주며 제라드의 수상이 확실시 되어가는 분위기였다. 하지만 뜬금없이 긱스가 수상을 하며 은퇴 전 공로상 격으로 준 것이냐며 온갖 비아냥과 비난이 빗발쳤다. 이 수상 논란은 아직까지도 최악의 개인상 수상 사례 중 하나로 꼽히며 축구팬들은 이 수상을 개인 수상 커리어로서 인정해주지 않는 추세와 상황이다.]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" [[파일:ryan-giggs-man-utd.jpg|width=100%]]}}} || 2009-10 시즌 초반에는 2경기에서 무려 5도움을 기록하고 [[안토니오 발렌시아]], [[루이스 나니|나니]]보다 더 활발한 모습을 보여 주며 '''회춘 모드'''를 보여 주고 있다. 그리고 11월 28일 [[포츠머스 FC]] 원정에서는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EPL 역대 17번째로 통산 100호 골을 기록했다. 12월 중에는 재계약을 체결하며 적어도 10-11 시즌까지는 잔류하게 되었다. 이후 4월 24일 [[토트넘 홋스퍼]] 상대로는 PK로만 멀티골을 기록했는데, 이는 긱스 커리어 첫 리그 PK 득점이라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